Key Points
- 깡통전세: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과 비슷하거나 높은 경우
- 무자본 갭투자, 갭투기
- “전세 사기는 사회적 재난”
진행자: 한국의 최신 트렌드를 엿보는 궁금한 디제이, K트렌드 꿰뚫기 시작합니다. 전수진 리포터 연결돼 있습니다. 이번주 어떤 소식입니까?
전수진: 오늘은 한국에서 사라져야 할 트렌드 아닌 트렌드 ‘전세사기’에 대해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진행자: 호주에서는 임대난 문제가 뜨거운 이슈인데, 한국에서는 전세사기 문제로 큰 파문이 촉발되고 있는데요… 전세 보증금을 제대로 반환 받지 못해 눈물을 짓는 깡통전세, 전세사기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하죠. 지난 5월 1일 한국정부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법을 보완했지만 피해자의 보증금 전액 회수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면서요.
전수진: 국토교통부는 지난 15일 열린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총 694건에 대해 추가로 전세사기피해자로 가결해 그간 위원회에서 최종 의결한 전세사기피해자 가결 건은 824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엄청 난 수 인데요. 전국은 현재 전세사기로 전세값이 떨어지거나 거래가 이뤄지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진행자: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는 전세사기...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게 된 거죠?
전수진: 먼저 많이 알려진 사건이 있죠. ‘무자본 갭투자’ 전세 사기로 6개월 간 32명에게 80억원 넘는 피해를 준 사촌형제가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는데요. 서울 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공인중개사무소 중개 보조원인 사촌형과 함께 주택 32채로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A씨를 비롯해 51명을 사기 또는 공인중개법 위반 혐의로 송치했다고 지난 15일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7월부터 서울 강서구 등지에서 주택을 사들였는데요. 2020년 1월까지 6개월간 사들인 주택은 32채나 됐습니다.
진행자: 아니 6개원 간 32채의 주택을 사들였다…도대체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났길래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걸 까요?
전수진: 사촌형 B씨가 다른 중개보조원과 함께 실제 매매가격보다 높게 설정된 보증금액으로 전세계약을 할 세입자를 구했고 계약 체결과 동시에 A씨가 주택을 소유하도록 했습니다. A씨 등은 전세 보증금과 매매가액의 차액을 나눠가졌는데요. A씨와 B씨가 합쳐 약 3억 5천만원, 함께 범행한 중개보조원은 약 2억 5천만원의 범죄 수익을 챙긴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진행자: 이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좋은 머리를 좋은 곳에 활용하지 않고 악용한다면 결국 결말은 구속이거든요. 그런데 32채나 주택을 구매하고 사기행각을 벌였다면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전수진: 이들은 수익금을 고급 수입차 리스, 주식투자, 유흥비 등에 탕진했고요, 범행 이후 피해자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피해자는 총 32명, 피해액은 약 81억원에 달하고요. 경찰은 사촌형제가 경기도의 한 건축회사 기숙사에서 동거하면서 현장 근로자로 일하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 10월 둘 다 기숙사에서 체포했습니다.
진행자: 그 32명의 피해자들의 마음이 어떨까 걱정이 됩니다. 적은 돈도 아니고 1억이 훌쩍 넘어가는 돈일텐데… 누군가에겐 전 재산일 수 있거든요. 그런데 무자본 갭투자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바로 전세사기가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가 될 것 같은데요.
전수진: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근원은 제도 때문이겠죠.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사기꾼들이 활개 칠 수 있었던 토양을 ‘깡통전세’로 지적합니다. 깡통전세는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과 비슷하거나 높은데요. 따라서 전세를 끼면 소액 혹은 비용 없이 집 한 채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어 드릴게요. 매매가가 2억 원, 전세 보증금이 1억8천만원인 집이 있습니다. 그러면 집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은 전세 세입자를 구해서 1억 8천만원을 마련하고 자기 돈 2천 만원을 들여 집을 매수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죠. 그런데 주택의 가격을 높이 측정한다면 때로는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집을 매수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갭투기’죠.
깡통 전세는 전세가율이 높은 아파트보다는 빌라라고 부르는 다세대주택이나 다가구주택에서 발생합니다. 아파트 전세가율이 하락하는데도 다세대주택의 전세가율은 떨어지지 않았는데요. 부동산 시장이 활황기에 접어들어도 아파트는 매수 수요로 전환되지만, 다세대주택은 임차 수요로 여전히 머물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내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주택을 구매하고... 남의 돈으로 사기를 치는 가해자들 때문에 피해를 입는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겠죠.
전수진: 지난 달 14일 전세사기 관련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날 집회는 세계주거의 날과 빈곤 철폐의 날을 맞이 한 집회였는데요. 전세사기특별법을 바꾸기 위해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자들이 보신각터에 모였습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요. 대구에서 온 피해자는 “내년에 결혼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집도, 돈도 없는 신세가 됐다” 라고 말 했고요, 또 다른 피해자는 “빚을 갚기 위해 선박회사에 취업해 곧 1년 동안 원양어선을 탄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 강서구 전세사기 피해자 239명 가운데 96.6%가 피해 발생 후 정신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른 지역 전세 사기 피해자들처럼, 이들 또한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어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에 다각도로 보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진행자: 사실 이런 전세사기를 당하고 나면 앞으로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다는 그 자체로 참 서글픈 삶의 시작이 될 까봐 걱정이 됩니다.
전수진: 그렇습니다. 28세의 한 여성은 부모님의 퇴직금을 빌려 전세금을 냈는데 알고 보니 전세사기를 당한 겁니다. 그래서 대출이자를 갚으며 이명과 장염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 30대 남성은 내년 결혼 계획 자체가 무산된 데다 누구를 만나도 ‘이 사람이 내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토할 것 같은 증상으로 괴로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여성은 가끔 집에서 쫓겨나는 악몽을 꾸고, 집주인이 공과금을 미납해 수도와 전기, 가스 등이 끊길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행자: 전세사기의 피해자들의 경우 주택 유형이 빌라라는 점을 미뤄 볼 때 소득이 높은 편은 아닐 것 같은데요. 피해자들은 사기꾼들이 벌인 사태로 인해 전세보증금으로 묶였던 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대출 이자도 갚아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요?
전수진: 2023년 6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인데요. 집회 참석 현장에서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는 “현재 특별법은 (피해자로) 인정받기 어렵고, 인정 받는다 해도 실질적 도움을 받기 어렵다”라고 울분을 토했는데요. 그래서 한 보고서에서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선구제 후회수는 정부가 먼저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이후에 전세사기 주택을 경, 공매해서 매입비용을 회수하는 방법입니다. 해당 설문조사에 참여한 피해자 가구 1550 가구 중 78.3%가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진행자: 어떻게 보면 전세사기는 개인간 사기가 아닌 사회적 재난일 수 있죠. 때문에 명백히 정부에도 책임이 있어 보입니다. 먼저 갭투기를 마음껏 하도록 만든 제도적 토대를 만든 정부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식 감사합니다.
전수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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