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즐겨 먹던 호주인의 대표 간식 팀탐이나 시리얼이가격은 그대로인데 개수나 용량이 줄었다는 걸 느끼셨나요? 가격은 같은데 양이 줄었습니다.
“당신이 산 식품은 실제로 (양이) 줄었다” 영국BBC가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현상을 집중 보도하면서 낸 기사 제목입니다.
수축플레이션 즉 'shrinkflation'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업의 전술에 휩싸여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발생한 인건비나 재료비 등의 상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컬처 IN에서 짚어봅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Highlights
- 가격은 그대로인데 내용물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전략
- 미국· 영국· 호주 등 가공식품 제조업체 잇따라 내용물 줄여
- 기업들의 ‘눈 가리고 아웅’ 식 태도에 소비자들 두 번 운다
- "원료 부족… 내용물 줄이는 게 가격 상승보다 낫다 “ 해석
주양중 PD(이하 진행자): 최근 호주 공영 abc가 호주 기업의 슈링크플레이션 움직임에 대해 분석 보도를 내놨는데, 먼저 정확한 용어 풀이부터 들어가 보죠.
유화정 PD: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들다(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입니다.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기업들이 포장지 안의 음식물을 줄이는 현상을 이르는 신조어인데요.
가격도, 포장지도 그대로지만 포장 안에 든 내용물만 양이 줄거나 질이 나빠지는 현상을 '슈링크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지난 2015년 영국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Pippa Malmgren)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이후 온라인 상에서 인기를 끌면서 현재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진행자: 다시 말하면 '패키지 다운사이징(package downsizing)이군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기업이 가격 인상의 대안으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요.
유화정 PD: 그렇습니다.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이고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이면 이윤이 커지게 되죠. 따라서 기업들이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크기나 용량을 줄이거나, 또는 품질을 낮춰 생산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인데요. 판매량은 유지하되 비용은 줄여 영업 마진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Shrinkflation is undoubtedly legal but it’s debatable how ethical it is to shrink serving sizes and hope your customers won’t notice. Source: AAP
진행자: 가격은 종전 그대로이지만 실제 내용량이 줄어드니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제품의 가격이 올라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결국 숨겨진 '인플레이션'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유화정 PD: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하다 보니 이 때문에 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리는 대신 내용물을 줄여 제조 비용을 낮추는 겁니다. 가격이 올라가면 당연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리고 이는 매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를 회피하기 위해 만든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슈링크플레이션 작전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비자의 저항을 줄이는 것입니다. 나아가 최고의 전략은 소비자들이 모르게 하는 것인데요. 혹시 소비자들이 알더라도 합리적인 이유로 설명하는데, 그래서 기업들은 새 제품을 출시하면서 갖가지 이유를 대기도 합니다.
진행자: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태도인데, 슈링크플레이션을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인 예들을 좀 살펴보죠.
유화정 PD: 유명 과자 '오레오'를 판매하는 몬델리즈의 경우 자사의 캐드버리 위스파 초코바 크기를 줄이면서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포장했습니다.
펩시코의 게토레이는 스포츠 음료수 병 크기를 이전보다 14%가량 줄여 병 중간 부분이 잘룩 들어간 모습으로 변했는데 이를 가리켜 "공기역학적으로 잡기 쉽게 (“…easier to grab…”)하기 위한 재설계의 일환"이라고 포장했습니다.
또 너겟 제품의 개수를 줄인 버거킹의 설명에는 “제품 도입 이후 첫 번째 개수 변화 (”… the first shift in piece count since inception…”)라는 구차한 변명이 붙었습니다.
이밖에 장거리 비행에서 3번 주던 기내식은 두 번으로 줄었고, 하얏트 등 호텔 체인은 수건 재사용 캠페인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메인 디쉬 접시에 장식을 더하거나 고기를 비스듬히 썰어 담아 양을 더 넉넉하게 보이도록 하는 ‘플레이트 커버’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진행자: 몇 년 전 한국에서 이른바 '질소 과자' 논란으로 주목받은 현상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는데요. 한국 과자 회사들이 포장지 안에 내용물은 줄이고 대신 질소를 충전해 포장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논란이 됐던 사례였죠?
The Toblerone bar before and after it was ‘shrinkflated’. Source: AP
유화정 PD: ‘질소 과자’ 논란은 지난 2014년에 불거졌습니다. 봉지 안에 질소를 충전하면 과자 포장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게 되는데, 이 모습에 빗대 ‘질소 과자’라는 표현이 탄생했던 겁니다. 질소 포장법은 과자를 손상 없이 장기간 보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참고로 우리가 숨 쉬는 공기의 80%를 차지하는 질소는 색깔이나 맛, 냄새가 없고 안전하면서 저렴합니다.
질소는 또한 유통과정에서 일어나는 ‘과자의 변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식품은 산소와 만나면 변질되는데, 과자류 특히 기름에 튀긴 유탕 과자는 유통 중 산패가 잘 일어납니다. 이 때 산소 대신 채워진 반응성 낮은 질소는 산패를 방지하고 신선도를 유지해 바삭한 식감과 향을 유지시켜 줍니다.
진행자: 물론 과자봉지 속의 질소는 일차적으로 ‘과자의 파손 방지’, 그리고 ‘산패 방지’ 목적의 좋은 취지로 넣은 것이지만 봉지 안에 과자는 절반뿐이고, 대신 질소만 가득 차 있어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것이 당시 논란의 요지가 됐던 것이죠.
유화정 PD: 그렇습니다. 당시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대신, 중량을 줄이고 포장을 크게 한 과자 제조 회사의 고육지책을 비꼬아 "질소를 샀더니 과자는 서비스로 주네"라는 유명한 말이 돌기도 했는데요.
과자 회사들은 이에 대해 '내용물이 부서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그 설명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작용을 했습니다. 당시 국내 제과업체들의 과대포장에 대해 항의하는 의미를 담은 이른바 ‘질소 과자 뗏목’ 퍼포먼스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진행자: 기억합니다. 과자 봉지를 엮어 만든 뗏목으로 한강을 횡단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는데요. 퍼포먼스라기보다 실험에 가까웠죠. 사전 연습도 철저히 했다고 알려졌었고요.
'질소 과자 뗏목' 한강 횡단 2014 Source: yonhap
유화정 PD: ‘질소 과자 뗏목’에 대학생 두 명이 타고 900여 미터 떨어진 반대편 강둑에 도달하는 다소 무리라고 생각했던 시도가 성공하면서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국 내외적으로 크게 화제가 됐었습니다.
'질소과자 뗏목'은 롯데제과 꼬깔콘, 오리온 스윙칩과 포카칩 등 국산 봉지과자 160여 개를 테이프로 감고 비닐을 씌워 길이 2m, 폭 80㎝로 만든 2인용 뗏목이었는데요.
과자 봉지 뗏목을 타고 한강을 횡단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의외로 평범한 젊은이들의 의기투합으로 이뤄졌습니다. 당시 과자 뗏목 퍼포먼스를 벌인 대학생들은 "불매 운동을 떠나 해학적으로 비판하고 해외 과자의 판매량 증가에 대비해 국내 과자업체도 소비자 중심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달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진행자: 최근 들어 재차 이슈가 되고 있는 슈링크플레이션은 밥상 물가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소비자 중심적인 사고를 하다 보니 빚어지는 현상이 아닌가 싶은데요. 전문가들도 "가격 인상은 소비자 저항을 불러온다”고 우려하고 있다면서요?
유화정 PD: 전문가들은 홍수, 우크라이나 전쟁 등 계속되는 공급망 혼란으로 인해 향후 6개월 동안 소비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줄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호주의 경우 저녁 채소 가격이 75%나 오르고 Red meats(소. 돼지.양 고기 등)에이어 닭고기 가격이 뒤 따른다는 지적입니다.
퀸즈랜드 대학의 경제학자 존 퀴긴 교수는 abc와의 대담에서 “물가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만큼 선뜻 가격을 인상하기 어렵다”며,제품 크기를 줄이는 것이 기업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원래 크기가 복원되어 이전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슈퍼마켓 선반에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수축 인플레이션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임금 인상이 우선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진행자: 코로나 19 대응 과정에서 풀린 돈과 노동력 감소에 따른 공급 부족 등으로 안 그래도 기록적으로 치솟는 물가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제트 엔진'을 달아준 격이 됐는데요. 기름· 가스·곡물 등 원자재 가격은 폭등 수준이죠?
Shrinkflation may become more common in supermarkets the next 12 to 18 months. Source: AAP
유화정 PD: ‘원자재 대란’이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IFS)에 따르면, 가공식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곡물가는 최근 1년 간 30% 이상 치솟았습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니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도 당연히 올라가면서 기업은 패키징다운사이징을 택하게 되고, 소비자는 알게 모르게 ‘슈링크플레이션’의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인데요.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최근의 현상을 두고 ‘푸틴이 키운 지구촌 인플레’라는 표현도 나오고 있습니다.
진행자: 소비자가 모르고 있는 기업의 전술, 기업들이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크기나 중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는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에 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