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음력설을 맞이했습니다. 설은 새해 새로운 달의 첫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명절이 계속되면서 설 문화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 차례상을 준비할 수 없고, 얼굴을 마주하며 세배하고 덕담도 나눌 수 없는 상황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설의 본연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새해 첫날 먹는 첫 음식 떡국은 나이를 한 살 더하는 음식이라 해서 ‘첨세병’으로 불렸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은 떡국에서 유래했습니다.
‘떡국’에 담긴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펼쳐봅니다. 컬처 IN,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Highlights
- 설날 먹는 떡국, 나이 한 살 더해주는 음식… ‘첨세병’이라 불러
- 길게 뽑은 가래떡은 무병장수, 엽전 모양 썰기는 운세와 재복
- ‘꿩 대신 닭’ …귀한 꿩고기 대신 닭을 넣어 끓인 떡국에서 유래
주양중 PD(이하 진행자): 코로나 19 사태가 잦아들지 않아 이번 음력설도 가족 친지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그럼에도 설날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인 떡국 한 그릇만으로도 명절의 의미는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는데, 그만큼 떡국은 한국인에게 익숙하면서도 특별한 음식이죠.
유화정 PD: 한국인이라면 새해의 첫 끼니는 누구나 떡국을 먹습니다. 떡국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독특한 우리 고유의 음식이자 설날 상에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세찬입니다.
백의민족이라 불린 우리 선조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첫날에도 특유의 의미를 부여해 새해를 깨끗하고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맞이하고자 맑고 흰 떡국을 먹었습니다.
설날이면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으며 소원을 빌고 덕담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오랜 전통으로 호주의 한인동포들도 바쁜 이민 생활 중에 자칫 놓치기 쉬운 전통 명절을 더 소중히 이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진행자: 보통 ‘떡국 한 그릇 더 먹었다’라고 하면 문장 자체만으로는 단순히 배고파서 혹은 맛있어서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는 의미라는 것 누구나 알고 있죠. 이는 아마 우리가 설날 때마다 떡국을 먹기 때문이라는 답이 쉽게 나오는데요. 그런데, 언제부터 떡국을 먹기 시작했을까요?
임인년 음력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ource: KTO
유화정 PD: 떡국의 역사에 대해 정확히 나와 있는 문헌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떡국을 먹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19년 고구려 유리왕 이전으로 보고 있는데요.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상고시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먹었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했습니다.
떡국의 유래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고려 이전 우리의 주식은 쌀밥이 아닌 떡으로 여러 끼니 분의 쌀을 갈아 함께 떡을 만들어 나눠 먹었는데, 떡은 놔두면 수분이 증발해 굳기 때문에 먹기가 어려워 굳은 떡을 부드럽게 먹기 위해 국물에 넣어 먹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떡국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도 합니다.
Tteokguk is a traditional must-eat New Year's dish in Korea. Source: Getty Images
진행자: 오늘날과 같은 떡국의 모습을 조선시대 풍습을 기록한 역사 문헌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떡국을 겉모양이 희다고 해서 '백탕' 또는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고 해서 한자 떡 병을 써 '병탕'이라고 했고, 특히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죠?
유화정 PD: 우리 선조들은“병탕을 몇 그릇 먹었느냐”고 하면서 나이를 물었다고 합니다. 나이를 더하는 떡국이라 해서 첨세병으로 불린 것인데요.
조선 후기에 쓰인 '동국세시기(1849)의 음력설 떡국에 대한 기록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멥쌀가루를 쳐서 떡판에 놓고 나무 자루가 달린 떡메로 무수히 찧은 다음 손으로 둥글리어 기다랗게 늘여 만든 것을 백병(白餠·흰떡)이라 한다. 이것을 얇게 엽전같이 썰어 끓는 물에 꿩고기를 넣고 익히는데 이를 병탕(餠湯·떡국)이라 한다… 또한, 세속에 나이 먹는 것을 떡국을 몇 사발 먹었느냐고 칭한다.”
바로 이 부분이 떡국을 첨세병이라 불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설날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혼기 찬 성인 남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너 올해 몇 살 되지?’라고 하잖습니까. “병탕을 몇 그릇 먹었느냐?”라고 물은 선조들이 정말 슬기로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행자: 저희 SBS 한국어 프로그램이 임인년 음력설 특집의 일환으로 가래떡을 뽑는 방앗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봤는데요. 호주에서 3대째 가업을 이으며 한국의 전통 떡을 호주에 소개하고 있는 곳이죠. 가래떡 만드는 모습을 실로 오랜만에 본다고 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설날에 우리가 떡국을 먹는 의미를 이 긴 가래떡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요?
유화정 PD: 설 명절 앞두고 물에 불린 멥쌀 광주리 방앗간 앞에 길게 줄을 잇던 풍경,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가래 두 줄이 나오면 바로 물에 담가 건지고.. 이제는 시대상을 그린 다큐멘터리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풍경을 호주동포사회에서 다시 추억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시루에 찐 떡을 끊기지 않게 최대한 길게 늘여 가래로 뽑는 것은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 즉 무병장수와 집안에 재물이 죽죽 늘어나기를 희망하는 재복의 염원이 담겼습니다.
‘가래떡’은 독립 표제어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 있는데요. 가래떡의 유래는 농기구인 가래에서 가래 줄을 보고 떡을 손으로 비벼서 길게 만든 것이 그 시작이라고 전해집니다.
진행자: 가래떡을 길게 뽑는 이유가 장수와 집안의 번창을 의미하는 것이었군요. 몇 년 전 한국에서 만든 가래떡이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죠?
유화정 PD: 2019년 충남 당진시가 지역 특산품인 해나루쌀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가래떡이 세계에서 가장 긴 가래떡 분야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등재된 것인데요. 길이 5천80m로 해나루쌀 4.5t이 들어갔습니다.
하얀 멥쌀로 만드는 가래떡의 흰색은 설날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좋지 않았던 지난 일들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해엔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습니다.
또, 지금은 떡국 떡 모양이 갸름한 어슷 썰기이지만 예전에는 엽전 모양으로 동글동글 썰었는데, 운세와 재복이 한 해 동안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진행자: 우리 속담에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있죠. 꼭 적당한 것이 없을 때 아쉬운 대로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요. 이 속담이 떡국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데 어떤 연유인가요?
The type of rice cake used for Tteokguk is called garaetteok. Source: Korean Tourism Office
유화정 PD: 네. 떡국에 얽힌 선조들의 재치가 담긴 속담인데요. 앞서 동국세시기에도 언급됐듯이 예전에는 떡국을 끓일 때 꿩고기를 넣어 국물의 맛을 냈습니다. 익힌 고기는 결대로 찢어 떡국 위에 고명으로 얹었습니다.
한국세시풍속사전에서는 떡국에 꿩고기가 들어가는 이유를 옛날 사람들이 꿩을 ‘하늘 닭’이라고 해 상서로운 새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는데요. 때문에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인 설날에 먹는 떡국에는 반드시 꿩고기를 넣어 끓였습니다.
그런데 ‘동국세시기’를 보면 ‘떡국에는 원래 꿩고기가 쓰였으나 꿩을 구하기 힘들면 대신 닭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꿩은 야생동물로 잡기가 힘들고 일반 서민들이 구하기엔 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꿩을 구하지 못한 집에서 재치를 발휘해 생각해낸 것이 꿩과 유사한 닭이었던 겁니다.
진행자: 그래서 생긴 속담이 바로 ‘꿩 대신 닭’이군요. 흥미롭습니다. 지금 시대엔 꿩고기도 닭고기도 아닌 소고기 국물이 보편적인데, 이는 소고기를 쉽게 구하게 된 이후에 생겨난 변화상이겠죠.
한국의 가장 보편적인 음식인 김치에도 경상도 전라도 등 각 지역별 맛과 특색이 다르듯이 떡국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맛과 모습을 지니고 있다면서요?유화정 PD: 새해 첫날 한 해의 만복을 기원하며 누구나 먹는 전통음식이지만 각 지역별로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특산 재료를 넣으면서 다양한 맛과 특색을 지닌 음식으로 진화했습니다.
Rice cake soup with oysters(Tteokguk). Source: Getty Images
경상도는 지역색이 짙은 독특한 떡국이 많은데요. 굴·물메기 등 해산물을 이용한 굴 떡국과 물메기 떡국이 대표적입니다. 주로 경남 거제·통영 등 해안지역에서 많이 먹는데, 멸치·다시마·무로 끓인 육수에 해산물을 넣어 감칠맛이 일품입니다.
전라도에선 닭고기와 간장과 생강 등을 한참 졸여 만든 닭장을 넣어 끓인 닭장 떡국을 먹는 전통이 있고요. 전북지역에선 닭으로 육수를 낸 다음 두부를 넣어 끓인 두부떡국을 먹기도 합니다.
진행자: 경기도 강원도 이북지역에서는 떡국 대신 만둣국을 먹었다는데, 유독 북쪽 지방에서 만둣국이 떡국 대신이 된 것은 기후 영향으로 쌀농사가 적은 탓 아니었을까 생각도 드는데요. 만둣국에도 지역별 특색이 있다고요?
유화정 PD: 이북의 전통음식들이 탈북민들을 통해 널리 소개가 되고 있는데요. 평안도에선 설날에 닭고기를 뭉쳐 달걀물에 한입 크기로 굴린 만두를 넣은 굴림 만둣국을 즐겼고, 함경도에선 만주지역과 가까워 꿩 사냥 문화가 발달했던 터라 다진 꿩고기로 채운 복주머니 형태의 만두를 넣은 꿩만두국을 먹었습니다.이북 개성지방에선 떡 가운데를 잘록하게 만든 조랭이 떡국이 유명한데요. 떡 모양이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고 여긴 조롱박 혹은 누에고치의 모양과 비슷해 한해 액운을 물리치고 일이 잘 풀리라고 기원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Joraengi-tteokguk Source: Getty Images
진행자: 재료와 지역에 따라 만드는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 조상의 지혜와 전통은 떡국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새해 첫날 온 가족이 함께 나누는 음식 '떡국' 임인년 음력설을 맞아 우리 음식 떡국의 유래와 의미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