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온라인 매체를 이용한 선전에 연일 힘을 쏟고 있습니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거나 패션에 신경 쓰는 조직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과거와 다른 탈레반의 모습을 알리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탈레반 2.0’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판도 큽니다. 컬처 IN에서 짚어봅니다.
Highlights
- “왜 청바지 입냐” 총 겨누던 탈레반, 본인들은 ‘구찌’ 스타일로 활보
- 50년 전 미니스커트 입던 아프간 여성들, 이젠 부르카 안 쓰면 총살
-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는 최근 부르카 가격이 10배 가까이 급등
조은아 PD(이하 진행자): 20년 만에 아프간을 재 점령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은 언론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탈레반의 변화된 모습을 강조하는 분위기인데요.
유화정 PD: 탈레반은 아프간을 점령한 뒤 온라인 매체를 이용한 선전에 연일 힘을 쏟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지속해서 노출하는 한편 과거와 달라진 탈레반의 모습을 알리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SNS에서는 탈레반 조직원들이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는 모습이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 선글라스나 운동화, 야구모자 등 패션에 신경 쓰는 모습 등이 공개돼 주목을 받았는데요. 영국 데일리메일은 한 껏 꾸민 탈레반 구성원들의 사진들을 소개하며 “20년 전 엉성하고 털털하고 가혹했던 탈레반과는 다른 세계”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탈레반의 이 같은 변화를 꾀하는 모습에 대해 국제사회는 ‘탈레반 2.0’이라 칭하며 주목하는 모습인데요. 어떤 반응들을 보이고 있나요?
유화정 PD: 미국의 대테러 전문가들은 “현재의 탈레반은 과거와는 매우 다른 탈레반이다”며 “노련한 전투가이면서도 기술과 미디어에 정통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전투와 종교적 문제에 집중하고 대중과의 소통에 미숙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유럽 중심의 서구권은 탈레반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배경에는 정상 국가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프간을 재 점령했지만 경제 문제 등 여러 과제가 남아있고 국제사회의 협력 없이는 정상적인 국가 운영이 쉽지 않음을 탈레반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진행자: 데일리메일이 지난 23일 카불에서 공개한 탈레반 조직원들의 모습을 보면 일부는 수염을 아예 면도해 버렸거나 머리엔 터번 대신 야구모자와 스카프를 썼는데, 이는 이슬람 율법을 깨는 모습 아닌가요?
유화정 PD: 탈레반이 통치하던 1990년대에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탈레반의 남성들은 수염을 기르고 어두운 색의 전통 가운을, 여자는 8세부터 부르카를 입어야 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아프간 현지 매체에 따르면 탈레반은 남성 복장과 관련한 결정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편, 이 같은 사진들이 공개되자 한 트위터 계정에는 탈레반 조직원의 패션을 분석하는 글까지 등장했습니다. 이 트위터 계정은 이 탈레반이 터번 대신 슈프림 헤어밴드를 걸치고, 레이밴 선글라스를 썼으며, 아식스 운동화를 신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진품 여부를 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이 탈레반 조직원이 걸친 패션 아이템들이 진품이라면 호주화 8천800달러(약 750만 원)에 달한다는 차림을 했다는 계산을 내놨습니다.
진행자: 패션 차림의 탈레반 조직원들의 사진 공개에 앞서 청바지나 셔츠 등을 입은 남성들을 구타하거나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해져 공분을 샀는데, 정작 본인들이 가장 서구화된 패션을 입고 활보하는 격이네요.

Young Taliban fighters parade through the streets in sunglasses, trendy trainers and baseball caps while cracking down on western dress Source: daily mail
유화정 PD: 해당 영상에 따르면 현지 남성 4명이 수도 카불의 거리를 걷던 중 무장 탈레반과 마주쳤고, 일행 중2명이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리 한복판에서 구타와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한 남성은 “탈레반은 총으로 위협하면서 사람들을 구타하고 협박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단지 자유로운 복장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 남성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서구 패션을 따르며 과거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탈레반에 대해 전 세계 네티즌들은 오히려 ‘위선’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던지고 있습니다.
진행자: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을 향한 탄압은 더 심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아프간 여성들은 억압적인 과거로 돌아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죠?
유화정 PD: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 국영 TV의 유명 앵커인 카디자 아민을 비롯한 여성 직원들을 무기한 정직시켰습니다.뉴욕타임스는 “나는 기자인데 일할 수 없게 됐다. 탈레반은 변하지 않았다”라고 한 아민 기자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이 나라를 장악함에 따라 아프간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부닥칠지에 대한 불확실성과 깊은 불안감을 반영한다면서, 아프간 여성들은 억압적인 과거로 돌아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실제로 부르카 없이 외출한 여성이 탈레반의 총에 맞아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이후 부르카를 서로 먼저 구매하려는 수요가 쏠리면서 수도 카불의 경우 부르카 가격이 10배가량 치솟았습니다.
진행자: 최근 외신에 따르면 아프간 네티즌들은 50년 전에 찍힌 한 장의 사진을 퍼 나르며 여성들의 응원에 나섰다는데, 놀랍게도 70년대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고요?
유화정 PD: 1972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거리를 걷고 있는 세 여성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이들은 길이가 무릎 위에 올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어, 아프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분방한 모습입니다. 실제로 1970년대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는 여성들이 부르카는 물론 히잡을 쓰지 않고, 자유로운 헤어 스타일에 미니스커트 등을 입어도 됐습니다.
진행자: 50년 전이 오히려 더 개방적이었다는 얘기인데, 언제부터 탈레반이 등장했고 샤리아 법이 재 시행됐는지, 아프간의 근대사를 잠시 정리해 보죠.

Young women wearing mini-skirts walking down the street in the city of Kabul, 1972. Source: BRUN/RAPHO
유화정 PD: 아프간은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1979년 옛 소련의 침공 이후 내전에 휘말리기 전까지 다른 중동 국가와 비교해 오히려 개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19년에서 1929년까지 통치했던 당시 아마눌라 칸 국왕(1919~1929년)은 “종교는 여성의 손과 발, 얼굴을 가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제해선 안 된다”라며 여성 전용 학교를 열고 일부다처제를 제한하는 등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의 부인 소라야 왕비는 아프간의 첫 여성운동가로 불리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탈레반은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후인 1990년대 초 파키스탄 북부에서 처음 등장했고, 1995년 아프간 정권을 장악한 이후 아프간 여성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는 부르카로 갈아 입어야 했습니다.
진행자: 뜻밖에도 탈레반은 파슈토어로 '학생'을 뜻한다고요?
유화정 PD: 탈레반은 파슈툰 족에 바탕을 둔 부족단체서 출발한 반군입니다. 수니파 이슬람의 강경 사상을 전파하는 신학교에서 처음 등장했고, 해당 학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탈레반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걸쳐 있는 파슈툰 지역에서 평화와 안보를 회복하고 엄격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 재시행을 약속했습니다.
소련이 축출된 후 각종 내분과 소련에 저항했던 아프간의 반군 게릴라 조직 무자헤딘의 지나친 행동에 지친 아프간인들은 처음엔 탈레반의 등장을 대체로 환영했습니다.
탈레반은 초기에 부패를 근절하고 불법을 억제하며 상업 번성에 필요한 안전한 도로와 지역을 개발하며 인기를 얻으면서,1998년까지 아프간 영토의 90%를 장악하기에 이릅니다.
진행자: 이후 살인범과 간통범에 대한 공개처형, 절도범에 대한 사지절단 등 샤리아 법의 엄격한 해석에 따른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고 지지했던 것이죠.

A member of the Taliban's religious police beating an Afghan woman in Kabul on August 26, 2001. Source: AAP
유화정 PD: 1996년부터 2001년까지 1차 아프간을 집권 당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을 앞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했습니다. 춤, 음악, TV 등 오락이 금지됐고 도둑의 손을 자르거나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하는 끔찍한 벌도 허용됐습니다.
특히 여성은 취업 및 각종 사회 활동이 제약됐고 교육 기회 또한 박탈됐습니다. 10세 이상 소녀들이 학교에 가는 것도 반대했습니다. 여성은 눈을 제외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를 입어야 했고,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공공 장소에서 소리내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남성의 동행 없이는 외출도 불가능했습니다.
진행자: 20년 만에 재집권한 탈레반은 초기 여성 권리 보장과 함께 여성들이 직업을 유지할 수 있다며 유화정책을 펼치는 듯하더니 결국 "아프가니스탄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선포하기에 이르렀죠?
유화정 PD: 부르카를 입지 않아 총살당한 피해 여성 소식이 일파만파 번지며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자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 학자가 여성의 역할과 여학생의 등교 허용 여부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탈레반 고위급 인사인 와히둘라 하시미는 지난 18일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여성이 히잡을 쓸지 부르카를 입을지 아니면, 아바야에 베일을 착용할지 그런 것은 율법 학자의 결정에 달려있다면서 "아프간 국민 99.99%가 무슬림이며 우리는 이슬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아바야는 검은 천으로 목부터 발 끝까지만 가리는 복장입니다.

Taliban Impose New Restrictions on Women Source: AAP
진행자:이런 가운데, 탈레반 맞서 '여성 보호'를 요구하는 아프간 여성들의 시위하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죠?
유화정 PD: 과거 탈레반의 5년 통치(1996∼2001년) 시절 억압을 받으며 인권 침해를 경험했던 아프간 여성들은 여성들이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고 다니던 시절을 기억하며 탈레반의 위협에 굴하지 말자고 서로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 상징적인 인물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 출신으로 열일곱 살에 최연소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여성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24)가 있습니다. 유사프자이는
유사프자이는 11살부터 익명으로 탈레반 점령지에서의 삶과 여학생들의 교육을 지지하는 글들을 블로그에 올렸고, 탈레반 1차 집권 당시 탈레반의 암살 대상이 돼,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바 있습니다. 유사프자이는 열여섯 번째 생일에 유엔본부 총회장 연단에 올라 “총탄은 우리를 침묵시키지 못한다. 한 명의 어린이, 한 권의 책,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꾼다”고 역설해,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 등 모든 이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은 안전, 안도, 존엄성 속에서 살 자격이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인도적 원조와 지원으로 그들을 돕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보장할 준비가 돼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컬처 IN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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