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이 ‘2021 북한인권백서’를 공개한 가운데 한류에 대한 북한의 규제와 처벌이 전반적으로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외부 문화 콘텐츠 특히 한국의 방송 및 녹화 물 시청 그리고 이를 저장한 디지털 기기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최고 사형까지 강화됐습니다. 백서에는 북한 내 기본권 실태를 가늠할 수 있는 분석들이 담겼습니다. 컬처 IN에서 들여다봅니다.
Highlights
- 북한, 사상 단속 강화… 한류콘텐츠 유포 시 최고 사형
- 외부 정보 단절 어려워…’BTS’, ’펜트하우스’ 실시간 시청
- 북한 20~30대 91%가 한류 콘텐츠 접한 경험 있어
조은아 PD(이하 진행자): 국무총리실 산하 통일연구원이 지난달 23일 2021 ‘북한인권백서’를 공개했는데요. 북한인권백서는 북한 내 인권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매개 역할이 되고 있죠. 어떤 내용을 토대로 하나요?
유화정 PD: 북한인권백서는 1996년부터 매년 발간됐습니다. 북한 인권 실상을 분석하면서, 탈북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 내 인권 상황을 분야 별로 정리해 일반에 알리는 게 그 목적입니다.
북한 내 인권 상황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기 때문에 매년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 눈에 띄는 대목은 “북한이 한국 등 외부 문화 콘텐츠와 이를 저장하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더욱 강화했다"는 부분입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주민들의 사상 통제를 주도했는데, 올해 그 처벌 수위를 더욱 강화해 철저한 내부 결속 및 체제 단속에 나섰습니다.
진행자: 이와 같은 내용이 공개되자 OHCHR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북한의 '반동문화사상배격법'에 대한 우려를 공식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죠?
유화정 PD: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따르면 지난 23일 비사법적 약식-임의 처형,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들이 북한에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이들은 서한에서 “사형은 의도적인 살인과 같은 가장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다"면서 반동문화사상배격법이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 표현의 자유에는 모든 종류의 정보와 아이디어를 찾고 수신하며 전달할 권리가 포함돼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국제인권법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외부 정보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외부 문화가 유입되면 저항 의식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진행자: 이미 북한에서는 컴퓨터와 휴대전화 보급률이 현저히 높아져 외부 문화 콘텐츠 또한 유입되는 사례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전에는 단속에 걸렸을 경우 뇌물을 통해 형기를 낮추거나 처벌을 면한 경우가 종종 있어왔죠?
유화정 PD: 최근의 조사에서는 한국의 녹화물과 한국과의 전화연결이 단속에 걸릴 경우 뇌물로 해결되지 않을뿐더러 해당 사례에 대한 처벌 및 단속이 중증 처벌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올해 공개된 백서에 따르면 북한에서의 해당 형벌은 최대 사형으로 강화됐습니다.
해당 법 설명자료에는 ‘반동사상문화배격질서를 침해한 범죄’의 처벌규정을 상세히 명시했는데,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남조선 관련 콘텐츠를 시청, 유포한 경우 5년 이상 15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그리고 유입 및 유포한 자는 무기노동교화형이나 사형 등 최고형에 처한다는 내용입니다. 과거 경범죄로 ‘강제 노동’에 처한 것에 비하면 중증 엄벌로 강화된 것입니다.진행자: 과거 구소련 시절 젊은이들이 비틀즈 음악에 열광하자 소련 당국은 외부 정보를 엄격히 통제한 바 있지만, 21세기 어떤 국가에서 다른 나라의 영상물과 정보를 유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을까요? 사형이라는 최고형까지 규정한 건 그만큼 외부정보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방증 한다고 봐야겠죠?
Kim Jong Un warns young people to reject foreign culture, including K-pop Source: AP
유화정 PD: 북한 주민들은 외부정보를 통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알게 되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비교하며 북한 체제에 대한 반감도 갖게 됩니다.
기존의 북한 형법 194조는 ‘퇴폐적이고 색정적이며 추잡한 내용을 반영한 음악, 춤, 그림, 도서, 전자 다매체’ 라고 규정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남조선(한국)의 영화나 편집물, 도서, 노래, 그림, 사진’으로 남조선을 명확히 표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조선식 어투나 글쓰기는 물론 남조선식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남조선 서체로 인쇄물을 만드는 행위’까지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습니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 청년들에 대해 옷차림과 언행까지 통제하는 ‘인간 개조’ 사업이 필요하다고 격앙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단적으로 말해 북한의 신세대가 급변하면서 북한이 긴장하고 있다는 건데, 김정은이 지적한 북한의 20~30대는 최악의 기근이 있었던 1990년대에 태어났거나 자란 세대죠?
유화정 PD: 맞습니다. 이들은 북한 집권당인 노동당의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불법 시장인 장마당 등에서 직접 경제활동을 하며 먹고살았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소위 “당이 나한테 해준 게 없는데, 왜 당의 말을 따라야 하나?”는 겁니다.
통계에 따르면, 북한 20~30대 중 91%가 알음알음 한류 콘텐츠를 접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사이에서는 한류가 엄청나게 퍼졌습니다. 특히 요즘 한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폭발적입니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20대 인민군들이 백두산 답사 장기자랑에 참석해서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Blood Sweat & Tears)’ 춤을 추다가 끌려간 사례도 있습니다.
진행자: 한국에서 인기몰이 중인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북한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실제 한국 드라마를 보다 적발된 북한 20대 청년들의 USB에서 ‘펜트하우스’가 나오기도 했죠?
유화정 PD: 6월 3일 평안남도 평성시 경기장에서 펜트하우스 시리즈를 시청하다 적발된 20대 4명과, 7월 10일 길거리에서 펜트하우스 시리즈 대사를 따라하다가 적발된 20대 남성을 비롯 펜트하우스 시리즈 시청자들을 줄재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다 적발된 USB와 SD 카드에는 남한 영화와 드라마 30여 편, 뮤직비디오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공개 재판은 4명이 손에 족쇄를 차고 끌려 나오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는데, 이들에게는 각각 10~12년의 노동교화형이 선고됐습니다. 길거리에서 펜트하우스 시리즈 대사를 따라 하며 표준어를 흉내 내다 적발된 20대 남성은 6개월의 노동단련대 처벌을 받았습니다.진행자: 북한 당국은 한류를 ‘괴뢰 문화’라고 명명하고 한류에 연관된 사람은 사형까지 처하겠다며 소탕을 선포했지만 강도 높은 통제에도 불구하고 별 소득이 없는 상황이라고 하죠?
BTS Blood Sweat & Tears Source: Big Hit Entertainment
유화정 PD: 주민들의 기본권 통제, 사상 표현의 자유,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 차단 등 북한 당국의 강력한 통제와 검열 및 단속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정보 접근 욕구와 수요가 감소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K-Pop을 듣는 북한 청년들, 이들은 단순히 한국 영상과 노래를 즐기는 걸 넘어서 말투까지 한국식으로 쓰는 등 전반적인 생활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과거 동독이나 다른 공산주의 국가처럼 속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진행자: 북한은 K-Pop, K-Drama 등 한류 콘텐츠에서, 나아가 한국식 결혼 영상을 찍어도 역시 강력 처벌 감이라는데, 북한 당국 관계자들의 경각심과 단속을 촉구하기 위한 교육용 영상이 제작됐다면서요?
유화정 PD: 19분 40초 분량의 영상에는 한국식으로 웨딩 영상을 촬영하다가 발각된 신혼부부들을 처벌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이 부부와 같은 영상물을 제작하는 젊은이들은 썩어 빠진 자본주의 사상문화를 끌어들인 혁명의 원수이자, 무자비하게 짓뭉개 버릴 박멸 대상"이라며 "추격전, 수색전, 소탕전을 맹렬히 벌여 밑 뿌리째까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라는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문도 나옵니다.
이 영상이 당간부들을 대상으로 제작된 것임을 미루어 볼 때 간부 통제의 빈틈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한편 북한 당국은 청년들의 한국식 옷차림이나 말투도 집중 단속하고 있는데, 현재 북한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거나 남자 친구를 '남친'이라고 부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Source: Reuters
진행자: ‘2021 북한인권백서’는 한류뿐만 아니라 탈북에 대한 처벌 내지 당국 내 인원 개선 징후 등 북한에 대한 현 상황을 낱낱이 공개했는데, 최근 탈북민 통제가 강화됐다는 지적도 담겼죠?
유화정 PD: 강제 송환된 탈북자에 대한 처벌도 전반적으로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탈북에 성공하는 경우는 크게 줄었습니다. 이는 국경 통제 및 탈북자 단속 수위를 높인 것으로, 실제 올 상반기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단 33명에 불과했습니다.
통일연구원은 강제 송환된 탈북자 처벌도 전반적으로 강화돼, 이를 피하기 위한 뇌물 액수가 치솟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탈북자 가족에 대한 감시 역시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체제 위기가 심해지면서 사상 단속을 강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됐는데, 현재 북한에서는 코로나19와 더불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경제 정책이 총체적으로 10년간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며 구조적인 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지적됐습니다
진행자: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공개석상에서 북한의 식량난을 공개하고, 코로나 방역 관련 ‘중대 사건’이 생겼다고 언급하는 등 연이어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죠. 끝으로 북한 내 인권 개선 징후도는 어떻게 나타났나요?
유화정 PD: 백서는 인권 개선에 대한 북한 당국의 긍정적 변화가 일부 포착됐다고 밝혔습니다. 먼저 과거에 비해 공개처형 빈도가 감소했고 김정은 위원장의 명령으로 전국적으로 공개총살이 없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구류 시설 내 구타 및 가혹행위를 근절하는 등 당국이 인권유린 상황을 감시한다는 증언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외부 세계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실질적인 인권 개선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밝혔습니다.
덧붙여 지난 2014년 2월 공개된 마이클 커비 전 호주연방대법관이 주도한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COI)의 보고서가 북한 외교가에 큰 압박이 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북한 사회에서 검열, 통제는 일상적인 영역이죠. 코로나19의 장기화 국면에서 외부사조 유입, 특히 한류에 민감히 반응하는 북한의 실상을 컬처 IN에서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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