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인: 옥스포드가 선정한 2024 올해의 단어 ‘브레인 롯’...그 의미는?

A digital illustration showing a person sitting at a desk. Behind him is a pile of books.

oxfords-2024-word-of-the-year-brain-rot-what-does-it-mean Source: Getty, SBS

옥스퍼드 사전은 2024년 올해의 단어로 'Brain rot'을 선정, 저품질 온라인 콘텐츠의 과잉 소비로 인한 지적 능력 저하와 정신 건강 악화를 우려했습니다.


Key Points
  • 올해의 단어, 단순한 언어 유행 넘어 사회적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척도
  • 옥스퍼드 사전 선정 'Brain rot'…소셜미디어 과도한 사용이 초래하는 정신적 쇠퇴
  • 맥쿼리 사전, enshittification…온라인 제품 ·서비스의 품질 저하 현상을 비유
올해도 각국의 주요 사전들이 2024년을 대표하는 단어를 발표했습니다.

올해의 단어는 그 시대의 유행이나 경향 등을 적극 반영하는데요. 단순히 언어적 변화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관심사,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해당 단어는 한 해의 기록이자 문화적 통찰로 여겨집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가 멍해지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브레인 롯’(Brain rot)을 선정했습니다.

호주 맥쿼리 사전(Macquarie Dictionary)에서는 ‘엔쉬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을 올해의 단어로 꼽았습니다.

자세한 내용 컬처인에서 짚어봅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나혜인 PD: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를 처음 선정한 것이 2004년입니다. 이후 매년 사회적, 문화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단어를 발표해 왔는데요. 이런 선정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유화정 PD: '올해의 단어'는 단순히 유행어나 화제를 넘어서, 한 해 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주제와 사회적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이 단어는 특정 시대의 언어적 변화뿐만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흐름과 사람들의 가치관, 그리고 직면한 문제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시대적 정서를 파악할 수 있죠. 특히 전 세계 주요 사전들이 발표하는 단어를 비교해 보면, 국가별로 중요하게 다뤄진 이슈나 문화적 차이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됩니다.

나혜인 PD: 맞아요. 그중에서도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브레인 롯’이라는 표현이 상당히 흥미로운데요. 브레인 롯은 직역하면 뇌가 손상되거나 썩는 상태를 말하는 단어죠.
rotting red tomatoes on the tree
red tomatoes that are rotting on trees are exposed to pests and weather Source: Moment RF / Eko Prasetyo/Getty Images
유화정 PD: ‘브레인 롯’은 직역적인 의미를 넘어서, 소셜미디어에서 저품질 콘텐츠를 과도하게 소비하며 정신적·지적 상태가 약화되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옥스퍼드 출판부는 이 표현이 특히 소셜미디어의 과도한 사용과 관련해 올해 주목받았다고 밝혔는데요.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릴스나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 적으로 몇 시간씩 스크롤을 하게 되는 행동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나혜인 PD: 그렇군요. 올해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저품질 콘텐츠를 지나치게 소비하는 현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우려를 불러일으키면서 이 단어가 새롭게 조명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주목받은 만큼 실제로 사용 빈도도 많이 늘었을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얼마나 자주 사용되었나요?

유화정 PD: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브레인 롯’이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2023년에서 2024년 사이에 무려 230% 증가했다고 합니다. BBC는 관련 보도에서 “인스타그램 릴스와 틱톡에서 무심코 몇 시간씩 스크롤을 하고 있다면, 당신도 브레인 롯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경각심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 옥스퍼드대 심리학자인 앤드루 프시 빌스키 교수는 이 단어가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하는 증상”이라고 분석하며 소셜미디어와 현대인의 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평가했습니다.

나혜인 PD: 그렇다면 ‘브레인 롯’이라는 표현은 최근에 새로 만들어진 단어인가요?

유화정 PD: 사실이 단어는 꽤 오래된 표현입니다. 처음 사용된 것은 1854년, 미국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 에서였는데요. 소로는 책에서 사회가 복잡한 아이디어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을 브레인 롯에 비유면서, 정신적이고 지적인 노력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과정을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나혜인 PD: 170년 전에 나온 단어라니 정말 놀랍네요. 그런데 최근 들어 디지털 시대의 맥락에서 다시 부활해 큰 공감을 얻고 있는 거군요.

유화정 PD: 맞습니다. 옥스퍼드 사전 대표인 캐스퍼 그래스월은 “브레인 롯은 가상 생활의 위험성과 우리가 자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며 “디지털 콘텐츠의 사용과 제작을 주로 담당하는 Z세대 즉, 1990년대 중반~2000년대 후반 출생한 세대와 2010년대 이후 출생한 알파 세대가 이 단어를 채택한 것도 흥미롭다”고 언급했습니다.

나혜인 PD: 올해의 단어 선정 과정이나 다른 후보 단어들도 궁금한데요. 어떤 단어들이 있었나요?

유화정 PD: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약 3만 7천여 명의 투표를 통해 올해의 단어를 선정했는데요. ‘브레인 롯’ 외에도 흥미로운 후보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소셜미디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신중 하거나 책임감 있는 행동을 뜻하는 형용사 ‘드뮤어’(Demure),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수요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을 표현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 누군가 또는 무언가와 관련 사실과 배경 정보 전반을 뜻하는 명사 ‘로어’(Lore), 로맨스와 판타지가 결합한 소설 장르를 규정하는 ‘로맨타지’(Romantasy), 그리고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온라인 저품질 콘텐츠를 뜻하는 ‘슬롭’(Slop) 등이 포함됐습니다.
AAP
Source: AAP
나혜인 PD: 이처럼 매년 선정되는 단어들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만큼, 올해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요. 호주 맥쿼리 사전에서는 엔쉬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을 올해의 단어로 꼽았다고요? 어떤 뜻인가요?

유화정 PD: 네, 이 단어는 온라인에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 점차 저하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맥쿼리 사전은 이 단어를 선정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현대 사회와 삶의 여러 측면에서 겪고 있다고 느끼는 일을 잘 포착했다”고 설명했는데요. 쉽게 말해, 처음에는 소비자 친화적으로 보였던 온라인 플랫폼들이 이제 점점 광고와 수익 창출에 집중하면서 사용자 경험을 희생시키는 과정을 의미하는 거죠.

맥쿼리 사전은 '엔쉬피티케이션'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면서" 이 단어는 많은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삶의 많은 측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일을 포착한 것"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맥쿼리 사전은 호주의 대표적인 영어 사전으로, 주로 호주 사회의 트렌드와 현상을 반영하는 단어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나혜인 PD: 정말 현대 디지털 환경을 잘 반영한 단어 같습니다. 다른 사전들은 올해의 단어로 어떤 단어를 선정했는지 좀 더 알아볼까요?

유화정 PD: 네, 다른 사전들도 저마다의 기준으로 흥미로운 단어들을 선정했습니다. 영국의 콜린스 사전(Collins Dictionary)은 올해의 단어로 ‘brat’을 선정했는데요. 이 단어는 원래 ‘악동’이나 ‘망나니’ 같은 부정적 의미였는데, 올해 6월 가수 찰리 XCX의 앨범 제목으로 사용된 이후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멋지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표현하는 긍정적 단어로 변화했습니다.

콜린스 사전 측은 “brat은 2024년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중 하나”라면서 “큰 성공을 거둔 가수의 앨범을 넘어서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문화 현상을 자리 잡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나혜인 PD: 딕셔너리닷컴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 ‘드뮤어(demure)’는 옥스퍼드 선정 최종 후보에 오른 단어이기도 해 더 주목을 받는 것 같네요.

유화정 PD: 온라인 사전인 딕셔너리닷컴(Dictionary.com)은 디지털 중심의 사전으로, 인터넷에서 확산된 단어와 새로운 의미 확장을 고려해 단어를 선정합니다. ‘드뮤어(demure)’는 원래 신중하거나 책임감 있는, 또는 ‘조용한’이라는 뜻을 지녔는데, 올해는 틱톡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련된 외모와 행동을 묘사하는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Maquarie dictionary
Maquarie dictionary Source: AAP
나혜인 PD: 호주에서는 맥쿼리 사전 외에도 호주국립사전센터에서도 매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오고 있는데, 호주국립사전센터의 올해의 단어는 Colesworth죠. 호주인이라면 그 선정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는데요.

유화정  PD: 그렇습니다. 호주의 대형 슈퍼마켓인 콜스(Coles)와 울워스(Woolworths)를 합친 말로, 두 기업이 생활비 압박 속에서 이중 독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소비자들의 냉소적 시각을 반영한 단어라고 볼 수 있죠.

콜스워스(Colesworth)는 생활비 압박 가운데 호주의 두 대형 슈퍼마켓의 이중 독점에 대한 우려로 점철된 한 해동안의 트렌트가 반영되었다는 평가입니다. 호주국립사전센터(ANDC)는 호주 국립대학 산하 기관으로, 호주만의 특수한 언어와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단어를 선정하고 있는데요. 2023년에는 여성 축구팀 관련 'Matilda'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습니다.

나혜인 PD: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단어들에 담긴 사회적 맥락도 주목할 만한데요. 과거에도 이처럼 사회적 맥락이 반영된 단어들이 선정됐었나요?

유화정  PD: 올해의 단어는 단순히 유행어를 넘어서, 특정 단어가 한 해 동안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 트렌드와 이슈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특정 시점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내는 중요한 기록물로 평가되죠.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의 첫 미국 대통령 당선 때인 2016년, 'Post-truth'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진실에 대한 상대적 태도가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었음을 반영한 것이었어요.

옥스퍼드 사전은 지난해에는 상대방에게 성적 끌림을 유도할 수 있는 매력, 능력, 스타일, 호감 등을 뜻하는 'Rizz'를, 2022년에는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고 멋대로 구는 태도를 뜻하는 'Goblin Mode'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습니다.

나혜인 PD: 언어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변화와 확장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또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그대로 비추고 있는 셈이니까요. 컬처인 오늘은 올해의 단어에 주목해 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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