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비 오는 날 향수를 자극하는 효과… 습도와 흐린 환경이 기억 회상을 더 쉽게 만들어
- 비가 오면 기압이 낮아지면서 후각과 미각의 변화로 기름지고 짠 음식을 더 찾게 돼
- 기압이 낮아질 때 사람들의 반응 속도는 평소보다 느려져… 빗길 교통 사고율 34% 증가
- 호주의 집중력 연구… 비 오는 날 고객들은 맑은 날보다 진열된 물품을 약 3배 더 잘 기억
창밖을 보니 회색빛 하늘, 조용히 떨어지는 빗소리… 왜인지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살짝 우울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어떤 날은 지난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평소보다 기름진 음식이 더 당기기도 하죠. 왜 비 오는 날이면 우리의 감정과 행동이 달라지는 걸까요?
오늘은 날씨가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숨겨진 영향을 함께 알아봅니다.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나혜인 PD: 호주 올여름, 유난히 비가 잦은데요. 비 오는 날이면 기분이 왠지 좀 달라지지 않나요? 괜히 감성적이 되고, 예전 일이 떠오르기도 하더라고요.
유화정 PD: 맞아요. 그런 경험,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텐데요. 비 오는 날이면 왠지 차분해지죠. 그리고 이상하게도 비오는 날에는 기름진 음식이 더 당기고요. 그런가하면 평소보다 어둡고 축축한 느낌 때문에 우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나혜인 PD: 그러게요. 그런데 왜 그런 걸까요? 단순히 그냥 분위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 몸이 실제로 변하는 걸까요?
유화정 PD: 비 오는 날 우리가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에는 여러 과학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빛의 밝기에 따라 멜라토닌, 세로토닌 등의 호르몬을 다르게 분비하며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데요. 비가 오면 빛의 밝기 즉 조도가 낮아지면서 이 두 호르몬의 양이 변화해 뇌와 감정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 부르는 세로토닌은 줄어들고, 졸음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은 늘어나면서 나른하고 감성적인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이죠.
나혜인 PD: 그래서 비 오는 날엔 유독 의욕이 떨어지는 느낌이 드나 봐요.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나른해져 낮잠을 자는 경우가 많죠.
유화정 PD: 좀 더 덧붙이자면, 산소는 우리 뇌의 감각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비가 오면 공기 중 수증기가 많아져 기압이 낮아지면서 산소 함량도 줄어듭니다. 이로 인해 우리 몸은 더 나른하고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혜인 PD: 그런데 종종 비 오는 날엔 옛 추억이나, 특히 헤어진 연인이 더 생각난다고들 하잖아요. 이게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얘기일까요?
유화정 PD: 네, 비를 보며 느끼는 감성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는데요. 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데는 뇌의 작동 원리가 작용합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감성과 기억력, 그리고 현재의 상황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해 작용하는데요. 특히 현재의 기분이 과거의 감정과 비슷할 때 해당 기억이 더 쉽게 떠오른다고 해요.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사랑이나 이별 같은 강렬한 감정을 경험했다면, 그때의 감정과 분위기가 함께 저장됐다가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heavy rain](https://images.sbs.com.au/drupal/yourlanguage/public/rain.jpg?imwidth=1280)
Credit: Public Domain
유화정 PD: 맞아요. 게다가 비 오는 날엔 습도가 높고, 흐린 환경이 기억 회상을 더 쉽게 만든다고 해요. 그래서 그날의 감정까지 더 생생하게 떠오를 수 있는 거죠.
나혜인 PD: 그렇군요! 그런데 비 오는 날도 종류가 다양하잖아요. 천둥 번개가 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조용한 보슬비가 내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잔잔한 빗소리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요.
유화정 PD: 맞습니다. 우리가 행복할 때 혹은 슬프고 힘들 때 신경세포는 다르게 활동한다고 하는데요. 이를 우리가 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뇌파죠. 비가 오는 날에는 뇌에서 8~13Hz의 알파(α) 파가 더 많이 발생하는데, 이 주파수는 우리가 편안함을 느낄 때 나오는 뇌파입니다. 잔잔한 빗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들은 '핑크 노이즈(Pink Noise)'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일정한 저주파 소리가 뇌파를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죠.
나혜인 PD: 생각보다 비 오는 날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많네요. 우리가 무심코 듣던 빗소리가 과학적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이유가 있었군요.
유화정 PD: 맞아요. 그리고 나 PD님, 혹시 비 오는 날 흙냄새를 맡아보신 적 있으세요?
나혜인 PD: 일부러 맡으려고 한 적은 없지만, 숲길을 산책할 때 자연스럽게 깊게 숨을 들이마시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비 오는 날엔 흙냄새가 더 짙었던 것 같네요.
유화정 PD: 맞습니다. 비 오는 날 흙냄새에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박테리아가 분비하는 지오스민(geosmin)이 포함돼 있기 때문인데요.
식물의 씨앗은 비가 오지 않을 때에 발아를 막기 위한 기름 성분을 분비하는데, 비가 올 때 이 기름이 씻겨 내려가면서 흙과 바위틈 사이에 모여 지오스민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활성화 돼 공기 중으로 퍼지게 됩니다. 지오스민은 향수의 원료로도 쓰일 만큼, 짙고 매혹적인 향을 가지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나혜인 PD: 그러니까 우리 뇌는 스스로 기분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비에 젖은 흙냄새를 맡으려 깊은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는 거네요. 정말 신기합니다. 그런데, 비 오는 날엔 유독 치킨이나 라면이 먹고 싶어지는 건 왜 그런 걸까요?
![Korean ramen craze continues](https://images.sbs.com.au/66/d7/b0c5a06046ed8d7303939bce6aaa/korean-ramyon-craze.jpg?imwidth=1280)
The popularity of Korean ramen goes global
나혜인 PD: 아~ 그래서 기름지고 짭짤한 음식이 더 당기는 거군요! 그럼 이건 뇌의 보상 시스템하고도 관련이 있겠네요?
유화정 PD: 정확합니다. 비 오는 날엔 앞서 말씀드렸듯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들면서 기분이 가라앉는데, 이때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섭취하면 각성과 의욕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분비돼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엔 치킨, 피자, 라면 같은 음식이 더 당기고, 어른들은 부침개와 전 같은 기름진 음식을 더 찾게 되는 것이죠.
나혜인 PD: 정말 과학적으로 다 설명이 되는군요! 습도가 높은 날엔 따뜻한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것도 맞나요?
유화정 PD: 맞아요. 습도가 높으면 우리 몸이 체온 유지를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열량이 높은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인데요. 따뜻한 음식은 몸을 따뜻하게 해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도와줍니다.
나혜인 PD: 비 오는 날 기분이 차분해지는 건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분비의 변화 때문이고, 기름진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미각과 뇌의 보상 시스템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요. 이 밖에 비 오는 날과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유화정 PD: 비 오는 날엔 빗길 교통사고 소식이 뉴스의 중심이 되곤 하죠. 실제로 비 오는 날 교통사고 발생률이 평소보다 34%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빗길에서는 시야가 흐려지는 것도 원인이지만, 기압이 낮아질 때 사람들의 반응 속도가 평소보다 느려지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합니다.
나혜인 PD: 운전자들은 비 오는 날 더 조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거군요.
유화정 PD: 그렇습니다. 또 미국의 흥미로운 연구가 눈길을 끄는데요. 비 오는 날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이 평소보다 팁을 10~15% 덜 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요.식당 내부 분위기가 밝고 활기찰수록 팁이 증가하는 반면, 흐리고 우울한 날씨에는 고객들이 전반적으로 지출을 줄이는 경향을 보였다고 해요.
이는 날씨가 소비 성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는데요. 비 오는 날에는 사람들의 감정뿐만 아니라 경제적 선택도 달라진다고 볼 수 있죠.
![income protection, may peraan](https://images.sbs.com.au/drupal/yourlanguage/public/podcast_images/umbrella-2904775_1280.jpg?imwidth=1280)
Do I need income insurance should I be unable to work? Source: Pixabay / Gerd Altmann from Pixabay
유화정 PD: 그렇습니다. 그리고 비 오는 날은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주변 소음이 차단되면서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는데요. 호주 시드니의 한 상점에서 진행된 실험에 따르면, 비 오는 날 우울한 음악이 흐르는 환경에서 쇼핑한 손님들이 맑은 날보다 진열된 물품을 약 3배 더 잘 기억했다고 합니다.
나혜인 PD: 비 오는 날 집중력이 더 높아진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연구군요!
유화정 PD: 맞습니다. 그러니까 비 오는 날을 그냥 우울하게 보내기 보다는,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 공부나 독서, 또는 깊이 있는 사색의 시간으로 활용하면 더욱 의미 있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비 오는 날은 우리 뇌에 색다른 자극을 주어 창의적 사고를 촉진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나혜인 PD: 날씨 하나로 이렇게 많은 변화가 생긴다는 게 신기하네요. 비 오는 날은 단지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각 변화, 소비 습관, 집중력, 기억력, 심지어 창의력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흥미롭습니다. 컬처인 오늘은 비 오는 날이 우리 삶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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