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인 PD: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독서량이 높고, 가구 소득이 낮을 수록 TV 시청률이 높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서량은 경제적 지표와 상관이 없을 것 같으면서도 유의미한 상관 관계가 있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독서의 장점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아이가 있는 많은 가정에서도 중요시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그렇지만 호주인들의 도서 구매량이 줄고 독서율도 떨어지고 있다고요?
홍태경 PD: 유럽 및 국제 도서 연맹의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인의 64%만이 작년에 책을 구매하고 80%가 책을 읽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조사 대상 19개국에서 책을 구매한 적이 있는 사람들의 평균은 72%로 8%가 더 높고 독서량 평균도 인구의 85%였습니다.
차이가 미미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도서 구매자와 독자로서 호주는 뉴질랜드, 핀란드, 라트비아, 미국과 함께 가장 낮은 독서율을 기록했습니다. 반면에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아일랜드에서 작년에 책을 읽은 사람의 수는 모두 90%가 넘었습니다.
2017년 맥쿼리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호주인 중 92%가 최소한 전년도에 한 번은 책을 읽었지만 2021년 전국 독서량 조사에서 이 수치는 75%로 떨어졌습니다.
나혜인 PD: 호주의 독서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걱정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네요. 어떤 이유 때문인지 궁금한데요, 호주에서는 책이 너무 비싸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생활비 위기를 겪고 있는 요즘 가구들이 도서를 구매할 여력이 없다는 것도 작용하지 않을까요?
홍태경 PD: 그렇죠. 현재 생활비 압박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책을 구매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도서 구매는 의무 지출이 아닌 재량 지출 목록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브리즈번의 리버밴드 북스(Riverbend Books)에서 아동 및 청소년 문학 전문가로 일하는 폴린 맥클라우드 씨는 아동도서 출판사들이 "지역 도서 가격을 22.99달러에서 25.99달러 사이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혜인 PD: 요즘에는 특히 종이책의 소장가치보다는 독서의 편의성과 저렴한 구매 비용에 초점을 둔 이북(e-book)이 대세이기 때문에 도서 구매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Around 80 per cent of Australians have read a book in the last year, according to a European and International Book Federation report. Source: Getty / Law Ho Ming
사실, 호주인은 캐나다, 뉴질랜드, 미국의 독자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책을 구매합니다. 예를 들어 팀 윈튼의 신작 소설 주스(Juice)의 호주 권장 소매 가격은 49.99달러입니다. 뉴질랜드에서는 거의 정확히 같은 가격(49.81달러)이고 캐나다에서는 54.59달러로 좀더 비쌉니다. 미국에서는 44.02달러에 판매되고 있고 영국에서는 43.07달러입니다.
영국의 도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유는 영국 도서에 판매세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독서 활동에 부담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으로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에 적용되는 부가가치세에서 도서 부문을 면제했습니다.
나혜인 PD: 세금이 면제되는 도서 장려 프로그램이라니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문화를 장려하려면 일단은 대중 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스마트폰이 아닌 독서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참 중요할 것 같은데요.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사실 도서 가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호주의 독서량이 높지 않은 데는 사람들의 자동차 의존도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인데요, 흥미롭게도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과 같이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독서율이 높은 경향이 있습니다. 기차에서 책을 읽는 것이 자동차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당연히 시간 활용도 면에서 쉽고, 또한 기차역에 서점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출퇴근 중에 책을 읽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조성하게 되는 겁니다.
반면에 호주, 미국, 뉴질랜드와 같이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에 의존하는 나라는 독서율이 낮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자동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호주에서는 오디오북이 다른 많은 나라보다 더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혜인 PD: 일리가 있는 얘기네요. 바쁜 현대인들이 따로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을텐데, 대중교통만큼 활용하기 좋은 시간은 없을테니까요. 그렇다면 가장 독서량이 높은 국가도 선정된 아일랜드의 경우에는 어떤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인지 살펴봐야겠는데요?
홍태경 PD: 아일랜드는 지난 12개월 동안 독서 인구가 91%에 달했습니다. 아일랜드는 역사적으로 도서 문화를 강력히 지원해오고 있는데요 예술위원회에 보조금과 장학금이 제공되고 문학 축제와 잡지, 공공 도서관, 서점 등 건강한 도서 생태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호주에도 물론 이러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만 다른 점이라면 아일랜드는 작가에 대한 지원이 상당하는 것입니다. 예술가의 소득에 대해 최대 5만 유로(약 $81,500)의 세금 면제와 2,000명의 예술가에게 주당 325유로(약 $530)를 지원하는 기본 소득 시범 제도가 있습니다.
Some countries have introduced measures to protect and value book culture. Source: Getty / ipekata/iStockphoto
나혜인 PD: 독서율이 높은 국가들은 다 이유가 있었군요.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호주에는 예를 들어 빅토리아주의 경우에는 멜버른 컵과 AFL 그랜드파이널과 같이 스포츠에 올인하는 공휴일이 있죠. 그렇지만 독서량이 많은 국가인 포르투갈에서는 포르투갈의 국경일인 포르투갈 데이(Portugal Day)가 포르투갈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여겨지는 시인 루이스 드 카모이스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포르투갈인은 85%가 지난 12개월 동안 책을 읽었는데요, 이는 정확히 국제 평균 독서율입니다. 그리고 포르투갈인의 37%는 독서를 취미 중 하나로 여기고 76%는 지난 1년 동안 국제 평균보다 높은 비율로 책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호주인의 32%만이 독서를 취미로 생각한다고 답했고,, 스페인은 44%, 영국에서는 42%가 취미가 독서라고 답했습니다.
나혜인 PD: 한때는 자기소개서나 서류를 작성할 때 취미란에 독서라는 글귀가 가장 흔했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취미가 독서라는 말은 점점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군요. 호주인들의 독서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캠페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태경 PD: 호주 최대의 서적 판매 산업 단체인 북피플(BookPeople)의 로비 이건 CEO는 지역 서점에서도 독서율이 감소하고 있기때문에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은 현실적으로 치열하고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는 달러는 부족한 상황"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건 대표와 같은 도서업계 리더들은 독서의 이점을 홍보하기 위한 국가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독서와 경제발전 간의 인과관계를 밝히거나나 경제발전의 원인으로 독서를 지목하기위한 데이터는 부족하지만 독서와 혁신 관련 주요 경제지표 간의 높은 상관관계는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건데요 특히 독서율은 국가의 창의성을 대표하는 혁신성 지수 및 기업가정신 지수와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겁니다.
호주도 책과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국가인만큼 다른 형태의 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이 심화되고 생활비 압박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독서 문화를 장려하는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습니다.
나혜인 PD: 네 잘 들었습니다. 친절한 경제, 오늘은 호주의 독서량의 현황을 살펴보고 독서율이 높은 국가들이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제공하는 경제적 혜택을 짚어 봤습니다. 홍태경 프로듀서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