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경제: 이혼 시 재산분할에 대비?... 증가하는 ‘혼전 계약’

A cartoon image of two hands gripping a wedding ring box - inside it contains a small form that reads "sign here"

Binding Financial Agreements - or 'prenups' - are on the rise in Australia, according to lawyers. Source: SBS / Caroline Huang

일부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였던 혼전계약이 이제는 더 많은 커플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문제때문인데요, 사랑하는 사이에 미래까지 약속한 사이지만 어색한 대화의 흐름 속에서 만약 이러한 계약 조건에 합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박성일 PD: 사실 혼전계약이라는 것은 제 세대만하더라도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는데요, 요즘 젊은 층에서 혼전계약이 늘어나고 있다고하니 많은 것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혼전계약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죠.

홍태경 PD: 혼전계약 즉 prenup(프리넙, prenuptial agreement)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결혼 전에 이혼 시에 필요한 재산 분할 등을 미리 정하는 혼전 계약서로 호주에서 구속력이 있는 재정적 합의(BFA)입니다. 이 계약을 통해 부부는 혼인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정 자산을 보호하고 별거나 이혼 시에도 해당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합니다.

호주 통계청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매년 약 5만 건의 이혼과 12만 건의 결혼이 이루어집니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또 100세 시대를 맞아 일평생 여러 차례 결혼을 하는 사람의 수도 늘어나면서 혼전계약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박성일 PD: 그렇군요. 사실 부부 중에 한쪽의 재산이 두드러지게 많을 경우에 재산관계를 결혼 전에 미리 정해두려는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닌데요, 한국에서는 이러한 혼전계약이라는 게 사실상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죠?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인식 변화로 프리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주나 해외에서와 같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아직 프리넙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세대가 변하면서 부부가 경제적으로 각자 관리하는 부부도 많아진만큼, 기여도에 따라 각자의 특유재산까지 이혼시 재산분할 대상이 되도록 하고 있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성일 PD: 그렇다면 호주에서 요즘 증가하고 있는 프리넙은 실제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한데요, 쌍방의 합의로 무난히 계약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한쪽만의 일방적인 요구인 경우에는 커플 사이에 재산 관계를 정리한다는 것이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죠.

홍태경 PD: 먼저 SBS The Feed에서 만나본 닉(가명) 씨와 그의 여자친구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들은 6년 동안 함께 살았는데, 닉은 혼전 계약서 즉 'prenup'을 만들자고 여자친구에게 제안했습니다. 이 계약서에는 두 사람이 차와 집을 포함한 각자의 자산에 대해 단독 재정적 소유권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닉과 여자친구가 이에 대한 대화를 계속하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가 위태롭게 됩니다.

닉 씨는 "여자친구는 우리에게 혼전계약서가 필요하다는 것은 헛소리라고 말하며 나와 말다툼을 시작했다.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자기를 믿지 않냐고 물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최근에 여자친구에게 말하지 않고 값비싼 물건을 "충동 구매”했고, 어떤 물건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나눠서 분류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여자친구의 주변 친구들은 닉과 헤어지라고 조언하기 시작했고, 닉 본인도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녀와 함께할 미래가 불안해졌습니다."

박성일 PD: 어찌보면 예상이 되는 결과이기도 한데요, 사랑하는 사이에 결혼하기도 전에 금전적으로 ‘이건 네꺼, 저건 내꺼’를 갈라놓겠다고 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상대에 대한 믿음 자체를 의심하게 되는 파국으로 향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호주에서도 프리넙을 준비하는 커플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죠?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점점 더 많은 젊은 호주인들이 혼전 계약을 실제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혼전 계약서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느 단계에서나 서명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는 두 당사자 간의 법적 계약입니다.

SBS The Feed가 인스타그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09명 중 38%는 "결혼할 경우 BFA를 받을 것인가"라는 설문 조사에서 38%가 ‘반드시 받는다’라고 답했고, 1%는 ‘이미 갖고 있다’, 22%는 ‘전혀 아니다’, 나머지 39%는 "사랑은 죽었고, 결혼은 사기다"라고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A poll that asks "Would you get a BFA if you were married", with 38 per cent saying definitely, 22 per cent saying absolutely not and 39 per cent saying "love is dead, marriage is a scam"
The Feed asked followers on Instagram if they'd request a BFA: 38 per cent of 209 votes said "Definitely". Source: SBS
가족법 전문 루이사 게타니 변호사는 혼전계약서 작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젊은층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게타니 변호사는 특히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젊은 성인들이 커플이 됐을 때 BFA(재정적 합의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고, 가족들은 그들의 자산이나 미래 자산을 보호하는 것에 대해 함께 관심을 갖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성일 PD: 그렇군요. 계약서를 작성할 때 어떤 조건이라든가 계약서 작성이 유효한 시기 등 그러한 요구사항이 있는 건가요?

홍태경 PD: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혼전 계약서는 결혼 전과 후에, 사실혼 관계에서도 언제든지 서명할 수 있습니다. 단, 사실혼 관계로 간주되려면 두 사람이 2년 동안 함께 살아야 합니다.

또 호주에서는 혼전 계약서(BFA)가 양측에 공정하거나 공평해야 한다는 요구 조건이 없습니다. 서로 합의하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작성한 내용이라도 함께 사인할 경우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가족법 담당 데이비드 게일 변호사는 가족들은 이혼 시 잃을 수도 있는 재산에 대해 "우려"한다고 말합니다. "상황이 안좋아지면 많은 상황이 달라질 수 있고, 많은 가족 구성원이 많은 노력과 희생으로 축적한 재산이 이혼 시 사라질까 봐 우려한다." 게일 변호사는 말했습니다.

그는 혼전계약이 늘어나는 것은 다음 세대로의 부의 이전, 그리고 여성의 재정적 자율성이 커진 데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편, ABC는 지난달 호주 가정전문 변호사협회(Australian Family Lawyers)에 문의하는 혼전 계약에 대한 문의 건수가 "2022년 상반기 153건에서 2023년 같은 기간에 274건으로 증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박성일 PD: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방식의 하나로 혼전계약서를 바라봐야 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렇다면 혼전계약서 작성에서 어떻게 내 소유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건가요? 이미 함께 살아오고 있다면 상당히 애매한 부분 아닌가요?

홍태경 PD: 상당히 애매할 수 있죠. 대부분이 자신이 더 많은 자산에 기여했다고 생각하거나 더 많은 자산을 보호하고 싶어합니다. 그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알아보죠. 50대인 그레임 씨는 자가인 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레임 씨는 만남을 시작한 지 4개월 째인 파트너에게 재정적 합의(BFA)에 서명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결코 "낭만적인" 대화가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합니다. 만난 지 4개월 만에 그들이 헤어질 경우 재정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명시하는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했습니다. 그레임 씨는 "그 과정이 약간 불쾌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제가 어느 정도 보호받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레임 씨는 이 일을 통해 파트너와의 관계에 있어서 많은 부분에 변화를 가져왔다면서, 두 사람은 경비 지출을 위한 공동 계좌를 개설함과 동시에 재정을 따로 관리하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들 커플은 BFA의 요구 조건에 따라 개별적으로 법률 자문을 받았고, 헤어진다면 두 사람 모두 "관계에 투자한 것을 가져갈 것"이라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레임 씨는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돈을 빼고 사랑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지 돈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Piles of coins next to a figurine of a bride and a groom.
According to the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there were 127,161 marriages registered in 2022 and 49,241 divorces. Source: Getty / amphotora
박성일 PD: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그럼 이렇게 커플이 맺은 재정적 합의(BFA)는 법정에서 유효한 것이죠?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BFA가 가족법에 따라 서명되었고 양측이 만족했다면 일반적으로 "뒤집기 어렵다"고 게타니 변호사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BFA가 "강요를 받아" 서명되었거나 사기 요소가 있는 경우, 또는 BFA가 당사자 중 한 명이나 자녀에게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또 한 쪽이 관계를 끝내려는 마음을 두고 계약을 맺는 경우, 계약을 파기할 수 있습니다.

박성일 PD: 그런데 이러한 혼전 계약 또는 재정적 합의를 논의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이에 분명 반가운 대화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러한 과정이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홍태경 PD: 시드니 관계 및 가족 실무 관련 심리학자인 시안 쿠만 박사는 BFA가 커플 관계 내에서 재정에 대한 "명확하고 직접적인 이해"를 설정해 줄 수는 있지만, 특히 한쪽이 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경우 신뢰를 잃게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BFA가 커플 관계에서 공정성, 균형 및 힘의 수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데요, 앞서 사례에서 만나봤던 닉 씨는 "파트너의 걱정을 달래기 위해" 법률 자문 비용을 책임지겠다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화는 "매우 다른 의사소통 스타일"을 드러내며 부딪히게 됐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불화를 극복하고 함께 지내며 지금은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데요, 이들은 부동산과 자녀를 위한 조항을 포함한 세부 정보를 추가로 BFA에 업데이트하기도 했습니다.
Small figurines of a man dressed in a suit, a woman in a wedding dress, two homes and a calculator
Some lawyers and psychologists say conversations revolving around finances can impact relationship dynamics. Source: Getty / Peter Dazeley
박성일 PD: 재정에 관련한 대화가 이렇게 커플간의 관계 역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네요.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닉 씨도 문제가 됐던 점은 BFA를 실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는데, 재정적 합의에 대해 논의할 때 매우 섬세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이상적으로는 관계 초기에 그러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처음부터 여자친구와 BFA에 대해 논의하고 함께 앉아서 초안을 작성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녀와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박성일 PD: 네 잘 들었습니다. 친절한 경제, 오늘은 달라지고 있는 혼전 계약서 행태, 젊은 층에서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 짚어봤습니다. 홍태경 프로듀서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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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Korean

02/01/2025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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