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인: 키가 2cm 크면 연봉이 오른다?...페이스펙부터 하이티즘까지

Businessman And Businesswoman Looking Up A Tall Ladder

A businesswoman and businessman stand at a profile to the camera as they looks up at a large wooden ruler that is standing on its end inside a large room. Credit: DNY59/Getty Images

키와 외모는 사회적 평가와 연봉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며, AI 면접과 비대면 사회는 이러한 외모 편향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Key Points
  • AI 면접, 외모까지 평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기존 사회의 '외모 편향'을 그대로 복제
  • 외모가 경쟁력…키 차별주의 '하이티즘 Heightism'과 얼굴도 스펙이 되는 '페이스펙 Facepec' 확산
  • 남성은 큰 키가 성공 확률 높이는 반면, 여성은 170 cm 이상 큰 키는 오히려 위협적 평가받아
"외모는 경쟁력이다"
어디선가 익숙하게 들어본 말이죠. 그런데, 그 경쟁력은 과연 공정한 걸까요?

키나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하이티즘(Heightism), 페이스펙(Facepec) 같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존재합니다.

게다가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 대신 AI가 평가하는 면접에서도 외모 편향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공정성'을 기대했던 AI조차 기존 사회의 편견을 고스란히 학습하고 있었던 겁니다.

AI 면접마저 학습한 '외모 차별'의 민낯, 외모 강박의 실상을 들여다봅니다.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합니다.

나혜인 PD: 한때는 사회생활에서 '능력'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지만, 요즘은 "미모도 스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시대가 됐습니다.

유화정 PD: 맞아요. 마치 외모가 사람의 가치를 가르는 기준처럼 여겨지고 있죠.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 외모에 대한 편견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1970년대 미국 언론에서는 외모를 기준으로 차별하는 현상을 ‘루키즘(lookism)’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이 단어는 옥스퍼드 사전에까지 등재됐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에서는 '외모'를 인종, 성별, 종교, 이념에 이어 새로운 차별 요소로 지목해 주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외모지상주의 '루키즘'은 결국 또 다른 차별을 낳게 되는데요. 가령 키가 작거나, 비만이거나 얼굴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른바 '루저(loser)'취급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나혜인 PD: 외모지상주의, 루키즘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있었죠. 몇 년 전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은 ‘키 논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유화정 PD: 맞아요. 일본 여성 프로게이머 타누카나가 아사히 TV에 출연해서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인데요. "남자가 키 170cm가 안 되면 인권이 없다"고 말해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심지어 "사지 연장술을 고려하라"는 추가 발언까지 하면서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는데요. 이후 일본 전역에서 비난 여론이 폭주하자 타누카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수 차례 사과문을 게재하고 반성의 뜻을 전했지만, 싸늘해진 여론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나혜인 PD: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한 대학의 퀸카로 꼽히던 여대생이 방송에 나와서 "남성의 키는 경쟁력이다", "키 180cm 미만 남성은 루저다" 이런 발언을 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죠.

유화정 PD: 맞아요.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그런데 일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어요. 타누카나의 망언 논란이 있은 뒤, 일본 정부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듯한 자료를 발표한 겁니다. 일본 내각부가 공개한 '인생 100년 시대의 결혼과 가족' 자료에 "남자는 80kg, 여자는 70kg 이상이면 연애할 자격이 없다"는 문구가 담긴 건데요. 게다가 "잘생기고 아름다울수록 연애 경험이 많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서 큰 충격을 줬습니다.

나혜인 PD: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풍조, 분명 문제인데요.. 그런데 왜 이렇게 고착화됐을까요?

유화정 PD: 외모가 단순히 연애나 결혼 문제를 넘어서, 취업이나 승진 같은 사회생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잘생긴 외모는 이제 하나의 '스펙'처럼 여겨지고 있죠. 실제로 '페이스펙(facepec)'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는데요. 얼굴(Face)과 스펙(Spec)을 합쳐서, 얼굴도 학벌이나 경력처럼 평가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SEVENTEEN
Heigtism Source: Twitter
나혜인 PD: 외모 편향 중에서도 키에 대한 선호, '하이티즘(Heightism)'도 문제로 지적되죠?

유화정 PD: 하이티즘은 프랑스 사회학자 니콜라 에르팽이 <키는 권력이다>라는 책에서 설명한 개념인데요. 간단히 말해, 키가 큰 사람이 더 많은 사회적 특권을 누린다는 키 차별주의입니다. 에르팽은 "키는 신분, 연봉, 연애, 결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또한 여성들이 키 큰 남성을 선호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보험'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나혜인 PD: 세상이 키가 큰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면 지나친 편견일 수 있지만, 실제로 현실 사회는 그렇게 움직이는 듯합니다. 하이티즘, 우리 사회 저변에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있죠?

유화정 PD: 맞습니다. 키에 대한 편견은 아주 뿌리 깊습니다. 키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더 '좋다'고 평가되는 특정 키가 있기 때문인데요.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교에서 하이티즘을 연구해 온 오머 키미 교수는 “동물 세계에서도 키가 큰 개체가 리더가 되는 경향이 있다. 즉 큰 키는 권위, 힘, 높은 지위 등과 연결 지어 인식된다”면서 이러한 본능 요소가 우리 인간 사회에 뿌리내렸다고 분석했습니다.

나혜인 PD: '키가 크다 = 리더십이 있다'라는 본능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거네요. 키가 직원 채용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던데요.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죠.

유화정 PD: 먼저, 채용 과정에서의 구조적 차별을 다룬 연구에 따르면, 비슷한 이력을 가진 지원자 중 키 큰 사람이 채용될 확률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기업 또한 지원자의 큰 키를 자신감· 능력· 신체 능력 등 긍정적인 업무 능력과 연관 짓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영국, 중국,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 모두 큰 키와 높은 임금 사이에 확실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채용 이후 승진에서도 키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미국 포춘 500대 기업 CEO 중 무려 58%가 키 6피트(약 182cm) 이상이라는 통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반면, 미국 전체 남성 중 6피트 이상은 14.5%에 불과합니다. 이는 즉, 키 큰 사람이 리더로 선발될 확률이 과도하게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죠.

나혜인 PD: 수치로 비교하니 하이티즘이 더 명확하게 비춰지는데요.

유화정 PD: 심지어, 미국 경제학자 티모시 저지는 "키가 2.5cm 더 클 때마다 연봉이 약 1.8%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나혜인 PD: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 모두 키 편견의 영향을 받나요?

유화정 PD: 차이가 있습니다. 남성은 키가 클수록 직장 내 성공 확률이 높아지지만, 여성은 너무 큰 키가 오히려 '비호감'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한 연구에서는, 특히 여성 지원자의 경우, "170cm 이상"이면 "위협적으로 보인다"는 편견을 가진 채용 담당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적당한 키'라는 또 다른 기준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죠.

나혜인 PD: 이런 하이티즘을 줄이려면 기업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겠죠. 최근 면접의 공정성을 위해 AI 면접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데 AI가 외모 평가까지 한다고 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죠?

유화정 PD: 네 한국 내 한 대기업이 도입한 AI 면접 시스템에서, 당시 지원자 일부가 "피부 톤이 어두우면 점수가 낮게 나온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요. 이에 대해 시민단체가 분석했더니, 실제로 얼굴색, 턱선 비율, 눈썹과 눈 간격 등 '외모적 요소'가 평가 지표에 반영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Is there any draw back with the use of facial recognition technology?
Facial recognition technology Source: Getty
미국 스탠퍼드대 AI 윤리 연구소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는데요. AI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다 보니, 기존 사회의 '외모 편향'을 그대로 복제하고 강화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죠. 즉 '외모가 좋으면 성실성, 리더십이 높게 평가된다'는 인간의 무의식적 편견이 AI 알고리즘에 스며든 겁니다.

나혜인 PD: 공정성을 위해 만든 AI가 오히려 차별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버린 셈이네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와 비대면 사회가 확산되면서 외모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고요?

유화정 PD: 미국 스탠포드대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경험한 직장인 중 61%가 "외모 관리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 메타버스나 아바타 기반 회의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현실 외모 대신 자신이 선택한 모습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고요. 특히 Z세대 사이에서는 '꾸미지 않는 자유'를 중시하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됐는데요. 한국에서도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를 넘어서, 아예 '화장 안 한 내 모습 그대로 출근'하는 트렌드까지 등장했습니다.

나혜인 PD: 그래도 여전히 외모에 대한 압박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죠?

유화정 PD: 네, 양면성이 있습니다. 사실 재택근무 중이라도 '줌 화상회의' 앞에서는 여전히 외모를 신경 써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2021년 미국 마케팅 회사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45%가 "줌 회의를 위해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옷을 고른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해방'이라기보다는, 외모 강박이 ‘형태만 바꿔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나혜인 PD: AI 시대에도, 비대면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외모의 틀 안에 갇혀 있네요. 외모는 ‘스펙이 아니다’라는 사회적 합의, 정말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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