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작가의 '고래'는 2004년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문단과 독자 모두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독특한 문체와 방대한 서사, 개성 넘치는 인물들로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아온 이 작품은 2023년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작에 오르며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 작품을 영어로 옮긴 번역가 김지영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로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김영하의 '빛의 제국' 등 다수의 한국 문학을 세계 독자에게 소개해왔습니다.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려요.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듣는 이야기들,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이야기란 본래
전하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듣는 이의 처지에 따라,
이야기꾼의 숨결과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모양이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독자인 우리는, 결국 믿고 싶은 이야기를 믿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천명관 작가는 소설 '고래'를 통해
그 이야기의 본질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책장을 넘기는 순간, 마치 오래된 시골 책방에서 먼지 쌓인 고서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 책은 따뜻한 햇살처럼 포근하기보다는,
거칠고 낯설며,
그 안에 단단한 진실을 꾹꾹 눌러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소설 '고래'는 금복과 그녀의 딸 춘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여자들의 생', 그 깊은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 마을을 잊고자 했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마주한 푸른 고래의 숨결.
금복은 죽음의 공포를 이긴 생명의 이미지를 그 거대한 몸짓 속에서 발견합니다.
산골 소녀에서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한 금복의 인생은
요란한 자갈길 위를 구르는 굴레처럼 덜컹이는 삶이었습니다.
친딸 춘희에게 단 한 번, 따스한 눈길조차 건네지 않는 금복.
그로 인해 가장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워야 할
모녀 사이의 정서는 뒤틀리고 맙니다.
훗날, 대극장을 설계한 건축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져
세상에 흔히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소개된
여자 벽돌공, 춘희.
딸 춘희의 인생은 처연합니다.
작가는 그녀에게 '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말보다 더 절절한 삶의 무게를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죠.

LONDON, ENGLAND - MAY 23: Author Cheon Myeong-kwan attends The International Booker Prize 2023 at Sky Garden on May 23, 2023 in London, England. (Photo by Jeff Spicer/Getty Images) Credit: Jeff Spicer/Jeff Spicer/Getty Images
같은 고요 속에서 두 존재는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았고,
함께 그리움을 견딥니다.
소설 속 배경인 '평대 마을'도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서서히 변해갑니다.
조용하던 산골은 분주해졌고,
사람들의 삶은 점점 바빠지고, 허기지고, 허전해집니다.
아무리 소비해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그 공허함.
'고래'라는 책의 제목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일 수도, 아니면
바닷속 깊이 잠들어 있다가 어느 순간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내쉬는
인내의 상징일지도 모릅니다.
하루하루를 벽돌처럼 구워내며 살아낸
춘희처럼 요.
세속적인 기준으로는 어쩌면 실패한 인생이었을지 모르지만
춘희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누구보다
아름답게, 단단하게 피워냈고
그 이야기는 이렇게 지금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겨 보죠.
“우리는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전설 같기도 설화 같기도 동화 같기도 한 이야기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만나봤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렸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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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책갈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름…‘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작가
SBS Korean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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